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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렌 버핏의 경영승계 철학 — 버크셔 해서웨이는 왜 후계자를 서두르지 않는가

한 줄 핵심

버핏은 "훌륭한 비즈니스를 적당한 가격에 사는 것이 적당한 비즈니스를 훌륭한 가격에 사는 것보다 낫다"고 했습니다. 승계에 대입하면 동일한 원리가 작동합니다. 준비 없는 빠른 승계보다 준비된 느린 승계가 기업의 영속성을 지킵니다. 버크셔 해서웨이는 그레그 에이블을 수십 년간 함께 일하며 검증한 뒤 후계자로 확정했습니다.

가업승계를 상담하다 보면 "빨리 넘겨야 세금이 줄지 않나요?"라는 질문을 자주 받습니다. 세법 혜택이 타이밍에 달려 있는 건 사실입니다. 그러나 세금만 보고 서두른 승계가 오히려 기업을 위태롭게 만든 사례도 적지 않습니다.

워렌 버핏의 철학은 다른 방향을 가리킵니다. 그는 수십 년 동안 "후계 계획이 있다"고 반복하면서도, 급하게 이름을 발표하지 않았습니다. 이 글은 버핏의 경영철학이 승계에 어떻게 적용되는지를 버크셔 해서웨이의 실제 과정과 함께 살펴봅니다.

버핏이 말한 '훌륭한 비즈니스'의 의미

버핏은 1989년 버크셔 주주서한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It's far better to buy a wonderful company at a fair price than a fair company at a wonderful price."— 워렌 버핏, 버크셔 해서웨이 주주서한 1989년

이 문장은 투자 기준을 말하지만, 승계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훌륭한 비즈니스'를 '준비된 후계자'로, '공정한 가격'을 '적절한 시점'으로 바꿔보면 논리가 동일합니다. 준비된 후계자에게 적절한 시점에 넘기는 것이, 준비 안 된 후계자에게 세금 혜택이 좋은 시점에 서둘러 넘기는 것보다 낫습니다.

버핏의 철학에서 '가격'은 거래의 마지막 조건이지 첫 번째 조건이 아닙니다. 비즈니스의 질이 먼저, 가격은 그다음입니다. 승계도 마찬가지로, 후계자의 준비 상태가 먼저, 세금 타이밍은 그다음입니다.

버크셔 해서웨이의 승계 계획: 수십 년의 과정

버핏은 2000년대 초반부터 주주총회와 서한에서 "이사회는 후계 계획을 갖고 있다"고 반복해서 밝혔습니다. 그러나 구체적인 이름은 오랫동안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그레그 에이블(Greg Abel)은 2018년 버크셔 해서웨이의 비보험 사업 부문 부회장으로 승격됐습니다. 그는 캐나다에 기반한 에너지 사업 파칸(PacifiCorp) 인수 시절부터 버핏과 함께 일했고, 경영 스타일·의사결정 방식을 오랜 시간 체득했습니다.

2021년 주주총회에서 찰리 멍거가 "에이블이 버크셔의 문화를 이해하고 유지할 것"이라고 발언하면서 사실상의 공식 지명이 이루어졌습니다. 버핏은 이를 확인하며 승계 계획이 명확하다고 밝혔습니다. 이후 2025년 버핏은 버크셔 해서웨이 연례 주주총회에서 에이블이 자신의 뒤를 이을 것임을 재확인했습니다.

시점버크셔 승계 과정
2000년대 초~중반버핏, 주주서한에서 "이사회에 후계 계획 있음" 반복 언급
2018년그레그 에이블, 비보험 사업 부문 부회장 승격
2021년찰리 멍거 발언으로 에이블 사실상 공식 후계자 확인
2025년버핏, 연례총회에서 에이블 승계 재확인

준비 없는 빠른 승계 vs 준비된 느린 승계

한국 중소기업 승계에서 흔히 보이는 패턴이 있습니다. 오너가 건강 이상이나 세법 혜택 마감을 이유로 급하게 주식을 증여하고, 후계자는 사실상 준비 없이 대표 자리에 오릅니다. 세금은 절약했지만, 경영 공백이 생깁니다.

버크셔의 접근은 반대였습니다. 후계자가 경영 문화를 체득하고, 주요 이해관계자들과 신뢰를 쌓고, 독자적인 판단력을 검증받는 기간이 충분히 주어졌습니다. 그 결과 에이블은 '갑작스러운 후계자'가 아니라 '이미 경영을 알고 있는 사람'으로서 자리를 이어받게 됩니다.

버핏의 철학에서 배울 점은 이것입니다. 승계는 발표 전부터 시작된다. 후계자가 경영에 참여하고, 실수를 경험하고, 판단력을 기르는 기간이 승계 준비의 본질입니다.

투명한 공개와 이해관계자 소통

버핏이 수십 년 동안 "후계 계획이 있다"고 반복한 것에도 의미가 있습니다. 이사회·주주·임직원이 불확실성을 느끼지 않도록 한 것입니다. 구체적인 이름을 공개하지 않으면서도, 계획 자체는 투명하게 소통했습니다.

한국 중소기업에서는 승계 계획을 비밀로 유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세금 문제나 경영권 분쟁을 우려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임직원이 승계에 대한 불확실성을 느끼면, 핵심 인재가 먼저 이탈할 수 있습니다. 버핏의 방식은 비밀 없이 계획을 갖고, 시간을 들여 준비하는 것이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버핏의 승계 방식은 대기업에만 해당되는 것 아닌가요?

원리는 규모와 무관합니다. 핵심은 후계자를 경영에 일찍 참여시켜 판단력을 기르게 하는 것입니다. 중소기업도 후계자를 핵심 부서 책임자로 두고 5~10년간 경영을 체득하게 할 수 있습니다.

Q. 세법 혜택 기간이 정해져 있으면 빨리 넘겨야 하지 않나요?

세법 타이밍과 후계자 준비는 병행 가능합니다. 주식 이전을 위한 세법 절차는 조기에 진행하되, 실질적인 경영 권한 이전은 후계자가 준비된 시점에 할 수 있습니다. 법률·세무 전문가와 함께 두 트랙을 분리해서 설계하는 것이 현실적입니다.

Q. 후계자 준비가 됐는지 어떻게 알 수 있나요?

버크셔의 방식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습니다. 독립적인 사업 단위를 맡아 성과를 낸 경험, 주요 이해관계자와의 신뢰 관계, 위기 상황에서의 판단력이 검증 기준이 됩니다. '발표'가 아니라 '현장에서의 검증'이 기준입니다.

한가람 — 기업백년 출판사 편집 연구원. 경영 고전을 가업승계 관점에서 재해석하는 담당으로, 드러커·버핏·콜린스 등 세계 경영 거장의 철학과 국내 중소기업 승계 현실을 연결하는 글을 쓴다. 기업백년 출판사에서 승계 관련 출판 기획을 병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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