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연재 · 제16화

부자들의 모임

부두 끝 카타마란 콕핏에 둘러앉아 맥주를 든 노년의 항해자들

매일 아침 해산물을 뿌리는 한국 사람이 있다는 말이 항구까지 갔다.

바바우는 남태평양 항해의 중간 기착지다.

세계 각지에서 온 배들이 여기서 쉬었다가 다음 목적지로 떠난다.

그중 상당수가 떠나지 않고 몇 달씩 앉아 있다.

어느 저녁, 게스트하우스 발코니로 남자 하나가 올라와 손을 내민다.

저쪽에서 마시는데 같이 가겠느냐고 묻는다.

이름을 말하고, 자기 배 이름을 말한다.

사람 이름보다 배 이름을 먼저 말하는 것이 여기 방식이라는 걸 나중에 안다.

부두 끝, 카타마란 한 척의 콕핏이다.

여덟 명쯤 앉아 있다.

자리를 만들어준다.

나는 가장 낮은 자리, 조타석 아래 계단에 앉는다.

시켜서가 아니라 거기가 비어 있었다.

여덟 명이 둘러앉은 콕핏, 조타석 아래 계단에 앉은 청년

우선 눈에 들어오는 것은 몸이다.

대부분 예순이 넘었는데 마르고 단단하다.

팔뚝에 잔근육이 붙어 있고 어깨가 벌어져 있다.

배에서 사는 사람의 몸이다.

손톱 밑이 깨끗하다.

바다에는 흙이 없으니까.

예순 넘은 몸들 — 마르고 단단한 팔뚝과 깨끗한 손톱

옷은 낡았다.

그런데 낡은 방식이 다르다.

오클랜드 뒷골목에서 보던 낡음이 아니다.

소금과 볕에 삭은 낡음이다.

폴로 셔츠의 깃이 늘어졌는데 면이 두껍다.

반바지의 무릎이 하얗게 바랬는데 바느질이 촘촘하다.

손목에 시계가 하나씩 있고, 다들 오래된 것이다.

결혼반지가 손가락에서 헐겁게 돈다.

배에서 살면 살이 빠진다.

볕에 삭은 옷과 오래된 시계, 손가락에서 헐겁게 도는 결혼반지

아무도 명함을 주지 않는다.

자기가 뭘 했던 사람인지 먼저 말하지 않는다.

나에게도 뭘 하느냐고 묻지 않는다.

그것이 편하다.

21일 동안 이반에게 매일 대답해야 했던 질문을 여기서는 아무도 하지 않는다.

이야기는 대체로 배 이야기다.

어느 부품이 어디서 나오는지.

뉴질랜드에서 사서 실어 와야 하는지, 피지에서 구할 수 있는지.

디젤값.

정박료.

물값.

얼음.

얼음이 제일 자주 나온다.

얼음 있는 배가 그날의 주최자다.

오늘은 이 카타마란에 얼음이 있어서 맥주가 차갑다.

얼음이 있어 맥주가 차가운 배, 그날의 주최자

병원 이야기도 나온다.

이가 아프면 오클랜드로 날아간다.

여든 넘은 사람은 여기 없다.

어느 선까지 오다가 다들 돌아간다고 한다.

그 선이 어디쯤인지는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

주소가 없다는 이야기를 한 사람이 한다.

우편물은 딸이 받아 상자에 모아둔다고.

일 년에 한 번 만날 때 그 상자를 준다고.

대부분 버린다고.

일 년에 한 번 건네받는 우편물 상자 이야기

그러다 이야기가 옮겨간다.

영국에서 온 남자가 말한다.

예순여섯.

흰 곱슬머리에 안경을 썼고, 말할 때 몸이 옆에 앉은 아내 쪽으로 조금 기울어 있다.

제조업을 삼십 년 했다.

아들에게 넘기고 삼 년째 항해 중이다.

아내 쪽으로 몸이 기운 채 말하는 예순여섯 영국 남자

"은퇴가 아니에요. 졸업이에요."

맥주를 든 채 은퇴가 아니라 졸업이라고 말하는 남자

그가 맥주를 한 모금 마신다.

"가장 어려운 건 회사 키우는 게 아니라 물려주는 거였어요. 내가 다 해왔으니까. 놓는 게 어려웠어요."

"한 번에 넘기신 거예요?"

"아니. 칠 년 걸렸어요."

그가 손가락으로 숫자를 만든다.

"지분을 조금씩 넘겼어요. 매년 조금씩. 세금 때문이기도 하고, 그 애가 익숙해질 시간이 필요하기도 하고."

"칠 년요."

"칠 년 동안 제일 힘든 게 뭔지 알아요?"

그가 웃는다.

"아들이 틀리는 걸 보고 있는 거예요."

칠 년 중 가장 힘든 것을 말하며 웃는 남자

"…"

"틀리는 걸 보면 고쳐주고 싶어요. 그런데 고쳐주면 그건 아직 내 회사예요. 그 애 회사가 아니고."

그가 잠깐 말을 멈춘다.

"손해도 봤어요. 이천만 원쯤. 그냥 뒀어요. 이천만 원짜리 수업료였다고 생각하기로 했어요."

"…"

"마지막에 이사회에서 내 자리를 뺐어요. 내가 뺐어요. 그 자리가 있으면 사람들이 계속 나를 봐요. 그 애를 안 보고."

옆에서 누가 묻는다.

사무실에 마지막으로 나간 날이 언제였느냐고.

"기억나요. 안 나가기로 한 첫 달에 나는 매일 아침 여섯 시에 깼어요. 삼십 년을 그 시간에 깼으니까. 그런데 갈 데가 없어요."

그가 손바닥으로 콕핏 난간을 두어 번 두드린다.

"그래서 배를 샀어요. 갈 데가 필요했어요. 회사 말고."

갈 데가 없어 배를 샀다며 콕핏 난간을 두드리는 손

"손을 놓는 데 십 년이 걸렸어요. 회사를 만드는 것보다 더."

남아프리카에서 온 부부가 다음이다.

와이너리를 했다.

딸에게 넘기고 이 년째다.

남자는 회색 머리를 짧게 깎았고 어깨가 넓다.

아내는 갈색 머리를 묶고 큰 귀걸이를 했다.

두 사람은 나란히 앉아 서로를 보지 않고 같은 쪽을 본다.

"딸이 나보다 잘해요."

남자가 웃으며 말한다.

와이너리를 딸에게 넘긴 남아프리카 부부, 같은 쪽을 바라보며 앉아 있다

"아버지가 밑에 있으면 잘 못해요. 떠나줘야 해요."

아내가 옆에서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고는 덧붙인다.

"우리가 떠난 다음 해에 그 애가 상을 받았어요."

남자가 웃는다.

그런데 반 박자 늦게 웃는다.

딸이 상을 받았다는 말에 반 박자 늦게 웃는 아버지

말이 없던 사람도 있다.

네덜란드에서 왔다는 남자다.

승계 이야기가 나오는 동안 맥주만 마신다.

한참 뒤에 짧게 말한다.

"우리 애는 안 받겠다고 했어요."

맥주만 마시던 네덜란드 남자가 꺼낸 한마디, 아무도 되묻지 않는다

아무도 되묻지 않는다.

"그래서 팔았어요. 판 돈으로 이 배를 샀고."

그가 자기 배 쪽을 턱으로 가리킨다.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는다.

"이것도 나쁘지 않아요."

그러고는 다시 얼음 이야기로 돌아간다.

맥주를 마시며 그 이야기들을 듣는다.

한국에서는 없는 이야기다.

창업자가 살아 있는데 자녀에게 물려주고 떠나는 것.

한국에서는 죽을 때까지 회장이 회장이었다.

물러나는 게 아니라 빼앗기는 것, 승계가 아니라 전쟁이었다.

아버지와 아들이 법정에서 만나고, 형제가 지분을 두고 갈라서고.

그런 이야기라면 신문에서 매년 읽었다.

물론 민우가 알고 있는 것들은 대기업 이야기었지만 한국에서 온 민우에게 그들이 한 이야기는 낯설기만 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은 웃으면서 말한다.

더 이상한 것은, 아무도 그것을 대단한 일로 여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랑도 아니고 무용담도 아니다.

배가 몇 노트로 가고 어느 항구에 부품이 있는지를 말하는 것과 같은 목소리로 말한다.

자기가 삼십 년 만든 것을 자식에게 넘기고 나온 이야기를, 순서대로 일어난 일을 말하듯이 말한다.

이 이야기를 배 위에서 한 번 들었다.

콕핏에 누워 토할 것도 없이 누워 있을 때, 이반이 자기 이야기를 했다.

회사를 굴리면서 칠 년 동안 배를 만들었고, 배가 다 되자 회사를 넘기고 마흔일곱에 은퇴했다고.

그때는 그것이 이반 한 사람의 별난 인생인 줄 알았다.

여기 와서 보니 아니다.

항구마다 그런 사람이 정박해 있다.

영국에서, 남아프리카에서, 네덜란드에서.

같은 이야기를 다른 입으로 듣는다.

유럽엔 이런 사람이 많구나, 하고 생각했다.

이런 게 가능하다는 것.

그 생각이 머릿속에 박혔다.

그때는 그것이 나중에 무엇이 될지 몰랐다.

요트 사람들에게서 또 다른 이야기도 듣는다.

배를 몰고 다른 사람의 요트를 지정된 항구까지 배달해주는 직업, 딜리버리 스키퍼.

배 한 척을 통째로 맡아 대양을 건너 넘겨주고, 다음 배를 기다린다는 것.

그런 삶이 가능하다는 것.

며칠 진지하게 생각한다.

이반의 배에서 21일간 고생한 게 엊그제인데, 벌써 바다가 그리운 것이다.

배멀미로 죽을 것 같던 밤들, 혼자 서던 새벽 당직, 그 모든 걸 겪고도 다시 바다가 그립다.

바다는 그런 것이다.

사람을 삼키려 들다가도, 떠나온 뒤에는 다시 부른다.

며칠 뒤 오후, 네이아푸 시내를 걷다 소란을 듣는다.

남자가 개와 싸우고 있다.

떠돌이 개 한 마리가 짖고, 남자가 소리를 지른다.

이반이다.

21일간 나를 부려먹었던 이반, 규칙의 남자, 바다 위의 독재자.

내 주방은 안 된다던 남자, 낚싯대를 세 번 밟아 부러뜨린 남자.

그 남자가 길가에서 떠돌이 개와 막싸움을 하고 있다.

개가 자기를 향해 짖는다는 이유로.

회색 곱슬머리가 헝클어지고 얼굴이 벌겋다.

손을 휘젓고, 발을 구르고, 개보다 더 크게 소리를 지른다.

네이아푸 길가에서 떠돌이 개에게 소리를 지르는 이반

한참 서서 지켜본다.

웃음이 난다.

이 남자도 그냥 사람이다.

바다 위에서는 선장이었지만, 땅 위에서는 개한테 화를 내는 남자.

21일간 쌓였던 원망이 그 우스운 풍경 속으로 빠져나간다.

말을 걸지 않고 그냥 돌아선다.

인사도, 원망도,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돌아오는 길에 부두를 지난다.

어젯밤 앉아 있던 카타마란이 그대로 있다.

갑판에 빨래가 널려 있다.

셔츠 두 장과 수건 하나.

삼십 년 만든 회사를 넘기고 온 사람의 빨래도 저렇게 생겼다.

부두에 정박한 카타마란 갑판에 널린 셔츠 두 장과 수건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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