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연재 · 제15화

담배 한 갑의 아침

투페누 앞치마 차림으로 냄비를 나르는 민우와 사람들이 둘러앉은 아침 식탁

그날 밤, 민우는 그 규칙을 제대로 배운다.

투페누를 팔았던 호객꾼이 친구를 네다섯 명 데리고 온다.

다들 웃는 얼굴로, 뭔가를 기대하는 얼굴로 게스트하우스 앞에 모인다.

"양주 더 있어?"

있다.

한 병.

아침까지만 해도 그건 감춰둘 물건이었다.

언제 위험한 일이 생길지 모르니 마지막까지 쥐고 있어야 하는 것.

그런데 낮에 배운 게 있다.

이 섬에서 그 병은 감춰두는 물건이 아니라 쓰는 물건이다.

감춰두면 그냥 유리병이고, 내놓으면 무엇이든 된다.

"있어. 한 병."

남자들이 서로를 본다.

아무도 먼저 값을 부르지 않는다.

낮에 투페누 한 장을 부른 남자도 입을 다물고 있다.

이번에는 민우가 먼저 말한다.

기민하고 상황 파악이 빠른 사람이었다.

그런 민우로 돌아오고 있었다.

"이번엔 옷 말고."

"그럼 뭐."

"바다에서 나오는 걸로."

한 남자가 손을 들어 크기를 그려 보인다.

팔꿈치에서 손끝까지다.

팔꿈치에서 손끝까지 킹크랩 크기를 그려 보이는 손

"킹크랩. 이만한 거."

"몇 마리."

그가 대답을 못 한다.

옆에 있던 남자가 대신 묻는다.

"몇 명분이면 되는데?"

게스트하우스 쪽을 턱으로 가리킨다.

불이 켜진 창이 여섯이다.

"이 집 사람들 전부."

짧은 정적이 있다.

그러고 나서 남자들이 자기들끼리 통가말로 빠르게 주고받는다.

웃음이 섞인다.

손이 나온다.

"딜."

그날 저녁, 문 앞에 놓인 것은 봉지가 아니라 플라스틱 상자다.

두 개다.

킹크랩 네 마리, 랍스터, 코코넛 크랩, 이름을 모르는 것들.

몇은 아직 다리를 움직인다.

상자를 들어 올리자 허리가 휜다.

문 앞에 놓인 플라스틱 상자 두 개와, 두 손으로 건네지는 잭 다니엘 마지막 한 병

잭 다니엘 한 병을 건넨다.

남자가 두 손으로 받는다.

낮의 그 손과 같은 손짓이다.

병을 햇빛에 비춰 볼 시간이 아니라서, 대신 상표를 엄지로 한 번 쓸어본다.

게스트하우스 주방을 빌린다.

큰 냄비에 물을 올리고, 삶고, 찌고, 굽는다.

버터와 마늘과 바다의 냄새가 주방에 가득 찬다.

요리랄게 없다.

한국이었다면 그냥 그대로 먹어도 되지만 민우는 은근히 게스트 하우스 사람들을 위한 요리를 준비하고 있었다.

주방 작업대에서 상자 속 랍스터를 꺼내는 민우

그 냄새가 복도를 타고 게스트하우스 전체로 퍼진다.

잠시 후 방문이 하나씩 열린다.

손님들이 냄새를 따라 하나둘 주방으로 나온다.

뉴질랜드에서 온 노부부, 독일 배낭여행자, 영국 남자 둘.

아무도 사양하지 않는다.

접시를 들고, 맥주를 들고, 식탁에 둘러앉는다.

21일간 감자와 통조림 햄만 먹던 입에 킹크랩 다리가 들어온다.

그날 밤 그 집에서 저녁을 굶은 사람은 없다.

접시가 비고 사람들이 흩어진 뒤, 상자를 가져왔던 남자가 다시 온다.

이번에는 혼자다.

"내일 아침에도 해줄까."

양주는 이제 없다.

그 말을 하려는데 그가 먼저 손가락으로 내 셔츠 주머니를 가리킨다.

말보로 한 갑이 들어 있다.

"그거면 돼."

머릿속으로 셈을 해본다.

한 보루가 열 갑, 세 보루면 서른 갑이다.

두 갑씩 열흘이면 스무 갑, 열 갑이 남는다.

이 섬에 머무는 동안은 계산이 맞는다.

"두 갑."

그가 말한다.

"해 뜨기 전에 바다 나가야 하니까 둘이 가."

말보로 두 갑이 손에서 손으로 건네지는 순간

"크레이피시도 되나."

"코코넛 크랩도. 랍스터도."

"딜."

다음 날 새벽, 아직 어두울 때 문 두드리는 소리에 잠이 깬다.

나가보니 봉지 가득 크레이피시와 코코넛 크랩과 랍스터가 담겨 있다.

몇 마리는 아직 살아서 봉지 안에서 꿈틀거린다.

밤바다에서 막 건져 올린 것들이다.

짠 냄새와 비린 냄새가 새벽 공기에 섞인다.

담배 두 갑을 건넨다.

남자가 그것을 받아 주머니에 넣고, 맨발로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그 뒤로 매일 아침 해산물이 온다.

해가 뜨기 전에 문을 두드리는 소리, 봉지 가득한 바다, 담배 두 갑.

열흘 치의 아침이 담배 두 보루 안에 들어 있다.

한국에서라면 상상도 못 할 환율이다.

담배 한 갑으로 열 사람이 아침을 먹는다.

아침 식탁은 매일 잔치가 된다.

처음 보는 얼굴들이 접시를 들고 모여 앉고, 어제 온 사람이 오늘도 오고, 새로 든 손님이 냄새를 따라 문을 연다.

국적도 나이도 제각각이다.

통하는 말은 절반쯤이지만, 크레이피시 껍질을 까는 손과 맥주를 따르는 손 사이에 말은 별로 필요하지 않다.

접시를 내려놓는 민우와 그 둘레로 모여 앉은 사람들

21일간 이반의 배에서 하루 십 달러를 내고 감자와 통조림 햄을 먹던 것을 생각하면, 이 아침들은 거의 비현실적이다.

담배 한 갑이 이렇게 큰 것을 살 수 있다는 것.

도망쳐 온 끝에 닿은 섬에서, 내가 남에게 무언가를 나눠주는 사람이 되어 있다는 것.

요트타고 온 한국 젊은이가 아침마다 해산물 파티를 연다는 소문은 바바우에 금방 퍼져나갔다.

그런데, 인종차별은 그럴때 발생한다.

호주에서 온 무리가 있다.

스킨스쿠버를 하러 왔다고 한다.

네다섯 명이 늘 몰려다니고, 그중 한 남자가 앞에 선다.

나머지는 그가 말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따라 웃는다.

해산물 파티 세 번째 날, 그가 웃지 않으며 말한다.

해산물이 가득한 식탁, 오른쪽 끝에 표정이 굳은 백인 남자

"매일 이렇게 뿌리고 다니면 뭐가 좋아?"

손에는 내가 삶은 크레이피시를 들고 있다.

그걸 먹으면서 그렇게 묻는다.

"어디서 왔는데?"

"한국이요."

그가 코웃음을 친다.

"한국 사람이 여기서 뭘 하는 거야."

무시한다.

대꾸할 말을 못 찾아서가 아니라, 대꾸할 필요를 못 느껴서다.

일행들이 그를 본다.

그가 웃지 않으니 아무도 웃지 않는다.

다음 날 아침에도 그는 식탁에 앉는다.

크레이피시를 먹으면서, 또 비슷한 말을 흘린다.

공짜로 먹으면서도 표정은 불쾌하다.

베푸는 쪽이 자기가 아니라 아시아인이라는 것, 그게 그에게는 견딜 수 없는 풍경이다.

백인 관광객이 아니라, 한국에서 온 남자가 이 식탁의 주인이라는 것.

그 사실이 그의 입맛을 상하게 하는 모양이다.

"영어발음도 형편없는.."

말꼬리를 흐린다.

"너 그거 알아? 고추는 씨를 빼야해. 고추씨에는 독소가 있어. 그걸 요리에 함부로 쓰면 안돼"

처음 듣는 이야기다.

고추씨가 들어있는 채로 말려 고추장을 먹는 게 전통인 나라에서 온 나한테 호주 동갑내기는 뭔가 트집을 잡을 꺼리를 찾았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길게 가져간다.

귀에 안들어온다.

웃으며 크레이피시를 뜯으며 다른 사람들과 아침을 즐긴다.

방해될 것은 주의를 안주면 된다.

그 남자를 보면 배 위의 이반이 떠오른다.

규칙을 자기가 쥐고 있어야 마음이 놓이는 사람들.

베푸는 자리에 자기가 있지 않으면 견디지 못하는 사람들.

호주 남자에게 이 식탁은 뒤집힌 세계다.

아시아에서 온 남자가 백인들에게 아침을 먹이는 세계.

그가 불쾌한 것은 크레이피시가 아니라 그 순서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대신 다음 날 아침, 그의 접시에도 어김없이 크레이피시를 올려놓는다.

어제와 똑같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그는 먹는다.

아무 말 없이.

접시가 빈다.

일행들도 먹는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호주 남자의 접시에 붉은 크레이피시를 올려주는 손

말로 이길 필요가 없다.

접시 위의 크레이피시가 이미 다 말하고 있다.

매일 아침, 그의 앞에 놓이는 그 붉은 껍질이.

빈 접시 앞에 말없이 앉은 남자들과, 뒤에서 다음 접시를 차리는 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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