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연재 · 제12화

바바우 (2)

무역풍에 돛을 가득 부풀리고 오 노트로 달리는 요트의 뱃머리

열아흐레째, 드디어 무역풍이 분다.

남동풍, 따뜻하고 강한 바람.

배는 시속 오노트로 달린다.

이반이 허용하는 최대 속도, 그래도 빠르다.

통가가 가까워진다.

이반도 기분이 나아진다.

애드먼드와 농담을 주고받고, 로이에게 커피까지 타준다.

나에게는 여전히 말이 없지만, 적어도 적대감은 사라진 것 같다.

그날 밤, 당직 중에 별을 본다.

이 주가 넘게 지났다.

이상한 일이 일어난다.

나를 생각하지 않게 된다.

내 과거를, 내가 두고 온 것들을.

파도만 있고 바람만 있고 지금만 있다.

나중에 읽게 될 크리스 맥캔들리스의 마지막 말이 있다 — "Happiness only real when shared."

요트 위에 네 명과 있었다.

말은 거의 안 했다.

하지만 혼자는 아니었다.

그게 달랐다.

그는 혼자 죽었고, 나는 함께 살아남고 있다.

달빛이 내린 밤바다에서 혼자 키를 잡은 민우

"저기!"

애드먼드가 소리친다.

출항 스무날째, 수평선에 낮은 섬 하나가 떠 있다.

이십일 일 만에 처음 보는 것들이 하나씩 눈에 들어온다.

초록색, 바다에는 없던 색이다.

야자수, 바다에는 없던 수직선이다.

흰 새, 바다에는 없던 생명이다.

통가타푸, 통가의 본섬이다.

배는 정박하지 않고 그대로 지나친다.

통가 열도를 오른편에 두고 계속 북상한다.

목적지는 바바우.

모두가 갑판으로 나와 말없이 섬들을 바라본다.

이십일 일 만이다.

뱃머리에 늘어서서 야자수가 선 섬을 말없이 바라보는 네 사람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이반이 선실로 내려가더니 면도를 하고 올라온다.

애드먼드도 세수를 하고, 로이도 옷을 갈아입는다.

이십 일 동안 아무도 차림새를 신경 쓰지 않았다.

수염이 덥수룩하든 옷에서 냄새가 나든 상관없었다.

그런데 육지가 보이자 다들 때를 빼고 광을 낸다.

거울을 본다.

낯선 얼굴이 있다.

수염, 갈라진 입술, 햇볕에 탄 피부.

한국을 떠날 때의 내가 아니다.

민물로 세수를 한다.

이십일 일 만이다.

소금기가 씻겨 나가고 피부가 당긴다.

시원하다.

섬을 배경으로 면도를 하고 세수를 하고 옷을 갈아입는 남자들

이십일 일 동안의 권력 게임이 끝나가고 있다.

이반의 배, 이반의 규칙, 이반의 왕국.

육지가 보이는 순간, 그 모든 게 풀리기 시작한다.

다시 각자의 세계로 돌아가는 것이다.

출항 스물한 날째, 2001년 6월 8일 저녁, 바바우 항구.

앵커를 내리고 엔진을 끈다.

정적.

파도 소리도 바람 소리도 사라진다.

어스름한 항구, 물속으로 잠기는 닻줄과 멀리 켜진 야자수 아래 불빛

이반이 말한다.

"다들 수고했어. 내일 입국 수속하고 각자 갈 길 가면 돼."

애드먼드가 묻는다.

"사진 찍자. 기념으로."

이반은 주저하다 고개를 끄덕인다.

살롱 안에 모인다.

로이가 카메라를 든다.

서른 살 나, 숱 성긴 흰머리 예순일곱 영국인 애드먼드, 회색 곱슬머리 쉰일곱 선장 이반.

셔터를 누르는 건 쉰 살 로이다.

"다들 웃어!"

콕핏에서 브이 포즈를 취한 세 사람 — 셔터를 누르는 것은 로이다

셔터가 눌린다.

나중에 그 사진을 보면, 이반만 표정이 굳어 있다.

그날 밤, 선실로 내려가 짐을 꺼낸다.

라면, 쌀, 통조림 — 이십일 일 동안 손대지 못했던 것들.

갑판으로 올라간다.

로이와 애드먼드가 있다.

이반은 자기 선실에 들어가 있다.

"나눠 먹읍시다."

로이가 웃는다.

"기다렸어."

애드먼드도 고개를 끄덕인다.

이반 없이 통조림을 열고 라면을 끓인다.

항구의 밤, 라면 냄비를 앞에 두고 웃는 세 사람과 닫힌 선실 문

"이거 이반한텐 줄 거야?"

"…아뇨."

"좋아."

애드먼드가 낄낄 웃는다.

밤새 먹고 마신다.

이반은 선실에서 나오지 않는다.

혼자 갑판에 앉는다.

바바우 항구의 불빛이 보인다.

작은 불빛들, 이십일 일 만에 보는 인공의 빛.

바다는 여전히 검고 하늘에는 여전히 별이 있다.

남십자성, 이십일 일 동안 나를 이끌어준 별.

나중에 읽게 될 무아테시에의 글이 있다 — "I could have won the race. But I chose to keep sa iling. Because the sea was more real than any trophy."

레이스를 하지 않았다.

트로피도 없었다.

그냥 도망쳤고, 여기까지 왔다.

하지만 무언가가 달라져 있다.

뭔지는 모른다.

그냥 느낀다.

이십일 일, 약 천백 마일, 평균 사노트, 네 남자, 한 척의 배.

그게 다였다.

하지만 그게 전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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