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이 지나간 자리에 바다가 순해진다.
남은 것은 긴 너울뿐이다.
배는 그 위를 미끄러진다.
닷새 동안 감자와 통조림 햄과 양배추를 먹는다.
매일 같은 접시다.
여드레째쯤부터 아무도 그것을 음식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접시를 받아 들고 잠깐 내려다본 다음에 먹는다.

점심을 먹고 나서 애드먼드가 말을 꺼낸다.
"야, 너 낚싯대 가져왔잖아. 그거 꺼내서 신선한 거 좀 가져와봐."

점잖은 목소리다.
하인에게 심부름을 시키는 사람의 점잖음이다.
로이와 나는 이반을 본다.
이반은 못 들은 척 로프만 만지작거린다.
매듭을 풀었다가 다시 묶는다.
방금 묶은 것과 같은 매듭이다.

"뭘 잡을 줄이나 알겠어. 먹을 줄이나 알겠지."
애드먼드가 자기 말에 자기가 웃는다.
로이가 눈짓을 보낸다.
가져오라는 눈짓이다.
이반이 반대하지 않는다는 것을 그가 먼저 읽었다.
살롱으로 내려가 짐 아래에서 낚싯대를 꺼낸다.
짧고 굵다.
세워 놓으면 가슴께에서 끝난다.
손잡이 쪽이 손아귀에 다 잡히지 않는다.
참치를 걸어 올리려고 만든 물건이라고 했다.
열나흘 만에 처음 꺼낸다.

루어를 단다.
은색이다.
물속에서 도망치는 것처럼 보이도록 만들어진 물건이다.
루어 낚시에는 속도가 있어야 한다.
이반은 여전히 돛을 반만 편다.
그래도 순풍이라 오 노트가 나온다.
겨우 된다.
줄을 뒤로 흘린다.
배가 지나온 자리에 흰 거품이 길게 남고, 그 끝에 은색이 잠겼다 떠올랐다 한다.
한 시간쯤 뒤에 줄이 당겨진다.
옐로핀이다.
갑판 위로 올려놓자 몸이 바뀐다.
회색이던 옆구리에 형광색이 번진다.
노랑과 파랑이 지느러미를 따라 지나간다.
죽어가면서 색을 켠다.
삼 분쯤 그렇게 있다가 색이 꺼진다.

납작해서 먹을 것이 별로 없다.
그래도 열나흘 만에 나온 신선한 살이다.
로이와 나는 회로 먹는다.
이반과 애드먼드는 그것을 야만스럽다는 눈으로 보면서 프라이팬에 굽는다.
다 굽고 나서 자기들 접시에 올린다.

"잘 먹었어."
로이가 말한다.
"Good boy!"
애드먼드가 접시를 들어 보인다.
이반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굽는 동안에도, 먹는 동안에도.
접시를 개수대에 내려놓고 갑판으로 올라간다.
그날 저녁 로이가 살롱 구석에서 종이팩을 하나 꺼낸다.
삼 리터짜리 와인이다.
손잡이가 달려 있고 옆구리에 꼭지가 붙어 있다.
뉴질랜드 슈퍼마켓에서 제일 싼 것이다.

"이거 오늘 열자."
컵에 따른다.
미지근하고 시다.
첫 모금에 목구멍이 데워진다.
배낭 안에 잭 다니엘 두 병이 있다.
면세점에서 산 것이다.
보름 가까이 한 번도 꺼내지 않았다.
사흘 동안 토하는 사람에게 위스키는 마실 것이 아니다.
이제 토하지 않게 됐는데도 꺼내지 않는다.
저 두 병이 여기서는 술이 아니라는 것을 아직 모른다.
다만 아까워서 두는 것뿐이다.
담배 세 보루도 그대로다.
로이가 컵을 채워준다.
애드먼드가 자기 양파를 썰어 자기 접시에만 올린다.
이반은 자기 선실에서 나오지 않는다.
다음 날에는 참치가 걸린다.
몸집은 작다.
배를 가르는데 뼈가 이상하다.
십자 모양이다.
"빨리 헤엄치려고 그렇게 된 거야."
로이가 말한다.
"몸을 통째로 하나로 쓰거든."
참치는 참치라서 먹을 것이 많다.
넷이 실컷 먹고도 남는다.
남은 살을 접시에 담아 개수대 옆에 둔다.
저녁에 다시 먹을 생각이었다.
이반이 그 접시를 낚아챈다.
들고 갑판으로 올라간다.
뱃전으로 팔을 뻗어 접시를 뒤집는다.
살이 물에 떨어진다.
흰 것 몇 조각이 배 뒤로 흘러가다 가라앉는다.

"보관할 데가 없어."
목소리가 크다.
묻지 않았는데 대답한다.
"상하면 어떻게 되는지 알아? 바다 한가운데서 넷이 다 설사하면 그게 어떻게 되는지 알아?"
로이가 말한다.
"저녁까지 여섯 시간이야, Ivan."
이반이 빈 접시를 로이에게 건넨다.
손잡이 쪽이 아니라 바닥 쪽을 내민다.
받으라는 것이 아니라 치우라는 것이다.
그리고 선실로 내려간다.
빈 접시를 씻는다.
개수대에 물이 고인다.
아까 그 손이 접시를 뒤집는 동작이 계속 떠오른다.
아깝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다른 생각이 든다.
저 사람은 지금 참치가 상할까 봐 화가 난 것이 아니다.
그다음 날 아침부터 로이와 애드먼드가 또 부추긴다.
오늘은 뭘 잡을 거냐고.
애드먼드는 아예 접시를 미리 꺼내 놓는다.
줄을 흘려놓고 콕핏에 앉아 있는데 굉음이 난다.
릴에서 나는 소리다.
줄이 뒤로 빨려 나간다.
스풀에서 연기가 난다.
끊어질 것처럼 소리가 높아진다.

애드먼드가 제일 먼저 소란을 피운다.
"엄청난 게 잡혔나 봐! 엄청난 거!"
로이가 낮게 말한다.
"그냥 둬. 그거 손으로 잡으면 손가락 잘려 나가."
순간 피터의 손이 떠오른다.
오른손 손가락 두 개가 없는 손.
그 손으로 커피를 따라주고, 그 손으로 어깨를 붙잡고 들어와 자라고 하던 사람.
어쩌다 그렇게 됐는지는 한 번도 묻지 않았다.

흥분되면서 무섭다.
두 가지가 동시에 온다.
줄이 다 풀리자 배에 꽂아둔 낚싯대가 활처럼 휜다.
힘겨루기가 시작된다.
"이제 잡아."
로이가 말한다.
"그냥 잡고만 있어."
"아직 감지 마."
로이는 키위다.
아웃도어에 관해서는 뉴질랜드 남자들이 다 그렇다.
롭도 그랬다.
사슴을 잡는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게 하던 사람.
"할 줄 알지? 이거 준 사람한테 배웠을 거 아냐."
"낚싯대를 들어 올렸다가 내리면서 감는 거야."
"그렇지. 잘하네."
배웠다.
피터와 몇 달 동안 스내퍼를 잡았다.
그 동작만은 몸에 남아 있다.
당기는 것과 감는 것을 동시에 하지 않는 것.
그것이 전부다.
피터는 늘 그렇게 말했다.
"낚싯대를 당기면서 저놈한테 신호를 보내는 거야. 난 너보다 힘이 세다, 포기해라."
"그다음에 내리면서 줄을 감아. 계속 내려두면 풀고 도망가."
"거리를 좁히면서도 장력은 놓지 마."
당긴다.
내리면서 감는다.
당긴다.
내리면서 감는다.
사십 분이 지난다.
손바닥에 릴 핸들 자국이 파인다.
대 끝을 배에 대고 몸을 뒤로 눕혀 체중으로 버틴다.
허리에 찰 벨트가 없으니 꽂을 데가 없다.
로이가 옆으로 온다.
지금까지는 코치만 했다.
흥을 빼앗지 않으려고 그랬다는 것을 나중에 안다.
시간이 너무 지체되니 도와주려고 손을 뻗는다.
그때 줄이 하늘로 올라간다.

이상하다.
장력은 그대로인데 줄이 바다에서 조금씩 떠오른다.
넷이 다 같은 곳을 본다.
당긴다.
감는다.
아까보다 힘이 덜 든다.
시야에 들어온 것은 새다.
거대한 새.
"알바트로스다."
로이가 낮게 말한다.
감탄하는 목소리다.
수면 위에서 흰 날개가 퍼덕인다.
바늘을 삼킨 채 물 위에서 버티고 있다.
몸집에 비해 힘이 세다.
릴이 감기지 않는다.
배의 속도가 눈에 띄게 떨어진다.
새가 배를 끌고 있는 셈이다.

이반이 튀어나온다.
"뭐? 이 자식이 새를 잡았다고?"
콕핏에서 나이프를 꺼낸다.
"놔줘! 당장!"
"뭐 하는 거야?"
"그걸 왜 끊어."
말이 나오기 전에 손이 먼저 움직인다.
줄을 쥔 손에서 피가 배어난다.
"줄 끊어!"
칼로 줄을 끊는다.
새가 날개를 펴고 멀어진다.
낚싯줄 끝에는 이제 앙상한 쇠뭉치, 바늘과 봉돌만 남는다.

이반이 낚싯대를 낚아채듯 빼앗는다.
갑판에 내려놓는다.
발을 들어, 온 체중을 실어, 내리찍는다.
한 번.
부러지지 않는다.
참치를 걸어 올리려고 만든 물건이다.
다시 한 번.
그래도 버틴다.
세 번째에 유리섬유 블랭크가 둔탁한 소리를 내며 꺾인다.
부러지는 데 세 번이 걸렸다는 것이, 그 물건이 무엇이었는지를 말한다.

"이제 끝이야."
이반이 말한다.
"내 배에 피 묻히지 마."
로이도 애드먼드도 아무 말 하지 않는다.
애드먼드는 아까 꺼내둔 접시를 들고 살롱으로 내려간다.
부러진 낚싯대를 주워 든다.
손잡이 쪽만 남고, 나머지는 두 동강이 나 있다.
피터의 낚싯대다.
천만원짜리.
"다시 들고 돌아오라고"
했던 것.
부러진 채로, 통가까지 가져가는 수밖에 없다.
갑판에 앉아 그것을 무릎 위에 놓는다.
어제 접시를 뒤집던 손과 방금 낚싯대를 밟은 발이 같은 동작이라는 것을 그때 안다.
상할까 봐도 아니고, 피가 묻을까 봐도 아니다.
이 배에서 무언가를 가져다주는 사람이 자기가 아니면 안 되는 것이다.
사흘 동안 그 자리를 내가 차지했다.
이틀 뒤에 그가 나에게 배에서 내리라고 소리치게 되는 이유도 라면 때문이 아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