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시각, 지구 반대편에서 어머니가 꿈을 꾸었다.
새벽이었다. 방은 어두웠고, 창밖은 아직 밤이었다. 어머니는 얕은 잠 속에서 뒤척이다 꿈으로 빠져들었다. 큰아들이 나오는 꿈이었다.
큰아들이 집을 잃었다. 장면이 바뀌었다. "엄마, 나 결혼해." "그 여자… 두 살 연상이라며." 어머니는 막지 못했다. 막고 싶었지만 막지 못했고, 그 결혼은 오래가지 못했다. 큰아들이 이혼했다. 또 장면이 바뀌었다. 공항이었다. 큰아들이 배낭을 메고 떠나고 있었다. "엄마, 나 뉴질랜드 가." 어머니는 넉넉하게 주지 못했다. 손에 쥐여준 것이 너무 적어서, 떠나는 그 손을 오래 붙잡고 있었다. 꿈속에서 장면은 자꾸 바뀌었다. 결혼에서 이혼으로, 이혼에서 공항으로, 아들이 자꾸 멀어지는 쪽으로만.
그리고 바다가 나왔다. 검은 바다였다. 아들이 그 속에서 허우적거렸다. 검은 물, 흰 포말, 그 사이로 손 하나가 올라왔다 내려갔다. "엄마!" 어머니는 손을 뻗었다. 닿지 않았다. 아무리 뻗어도 닿지 않았다. 물은 점점 높아지고, 손은 점점 멀어졌다. 아들의 얼굴이 물 아래로 잠겼다. 그 순간 어머니가 깼다.
숨이 가빴다. 등이 땀에 젖어 있었다. 심장이 방망이질했다. 방은 여전히 어두웠다. 꿈이라고 스스로 다독여도 가슴이 진정되지 않았다. 어머니는 자리에 앉아 어둠 속에서 그냥 울었다. 왜 우는지도 모른 채, 한참을 울었다. 다시 누워도 잠은 오지 않았다. 아들이 부르던 소리가 귓가에 남아 있었다. 엄마, 하고 부르던 그 한마디가.
어머니는 늘 큰아들이 걱정이었다. 어려서부터 겁이 없고, 하고 싶은 것은 해야 하는 아이였다. 대학에 가서는 거리로 나갔고, 군대에는 가지 못했고, 결혼은 짧게 끝났고, 벌인 일은 무너졌다. 그리고 지금은 이름도 들어본 적 없는 남쪽 바다 어딘가에 있었다. 떠난 뒤로 편지도, 전화도 없었다. 살아 있는지조차 알 길이 없었다. 어머니가 할 수 있는 것은 기다리는 것과, 꿈을 꾸는 것뿐이었다. 그리고 그 꿈이 하필 오늘, 아들을 바다에 빠뜨렸다.
새벽 다섯 시, 어머니는 전화기를 들었다. 이 시간에 전화를 걸 사람은 하나뿐이었다. 둘째였다. 신학교를 갓 졸업하고 대형교회 전도사로 들어간 아들. 큰아들이 바다로 떠난 뒤, 어머니 곁에 남은 아들이었다.
신호음이 몇 번 울리고, 잠에서 덜 깬 목소리가 받았다. "엄마, 새벽에 무슨 일이야?"
"꿈을 꿨어."
"…"
"형이 바다에서 날 불렀어."
수화기 너머로 잠깐 침묵이 흘렀다. 둘째는 그 말의 무게를 아는 사람이었다. 잠시 후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엄마, 기도하자." 그리고 그가 기도를 시작했다. "하나님, 지금 이 시간 형이 어디에 있든지…" 목소리가 잠깐 멈췄다가 다시 이어졌다. "흩어진 자를 모으시고, 상심한 자를 고치시며, 그들의 상처를 싸매시는 주님. 형을 지켜주세요."
어머니가 물었다. "그게 무슨 말씀이니?"
"시편 147편이에요." 둘째가 대답했다. "형 떠나기 전에, 형한테 해줬어요." 형이 뉴질랜드로 떠나던 날, 공항에서 동생은 성경책 한 권을 형의 배낭에 넣어주며 그 구절을 읽어주었다고 했다. 흩어진 자를 모으시고, 상심한 자를 고치시는. 형은 그것을 지니고 떠났다.
전화를 끊고도 어머니는 한참을 앉아 있었다. 창밖이 조금씩 밝아오고 있었다. 밤이 물러가고 있었다.
그 새벽, 남태평양에서는 폭풍이 막 지나간 참이었다. 어머니는 그것을 알지 못했다. 큰아들이 밤새 혼자 키를 잡고 마스트보다 높은 파도를 넘었다는 것도, 새벽 여섯 시에 그 파도가 거짓말처럼 잦아들었다는 것도. 두 사람은 같은 시간을 지나고 있었다. 한 사람은 바다 위에서 파도와, 한 사람은 어두운 방에서 꿈과. 어머니의 뻗은 손과 아들이 놓지 않은 키 사이에, 지구 반 바퀴의 바다가 놓여 있었다. 그 바다를 사이에 두고, 한쪽에서는 아들이 살아남으려 애썼고, 한쪽에서는 어머니가 그 아들을 위해 울었다. 둘 사이에 오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전화선도, 편지도, 소식 하나도. 다만 같은 시각, 같은 두려움이 두 사람을 동시에 흔들었을 뿐이다.
나는 그때 그 꿈을, 그 전화를, 그 기도를 몰랐다.
25년 후에야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