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를 떠나기 전, 면세점에서 잭 다니엘 두 병과 말보로 세 보루를 샀다. 요트 여행에 술과 담배가 필요하다는 건 상식이었다. 오래 항해하는 배에서 술과 담배는 긴장을 풀어주는 것이자, 사람과 사람 사이를 잇는 것이었다. 남태평양에서 양주와 담배는 돈보다 나았다. 섬에는 그런 게 흔치 않으니까. 21일간의 항해 동안 한 병은 이반과 나눠 마셨고, 담배는 한 보루쯤 피웠다. 바바우에 도착했을 때 남은 건 잭 다니엘 한 병과 말보로 두 보루.
이것이 모든 것의 시작이다.
며칠째 바바우에 머물면서 한 가지가 자꾸 눈에 들어온다. 나만 바지를 입고 있다. 통가 남자들은 모두 투페누를 입는다. 허리에 두르는 천, 무릎까지 내려오는 직사각형 천을 허리에 감아 매는 일상복이다. 공무원도, 학생도, 시장 상인도, 트럭 운전사도 투페누를 입는다. 정장 셔츠를 차려입은 은행원조차 허리 아래는 투페누다. 그 위에 서류 가방을 든다. 처음엔 낯설었는데, 며칠 지나자 바지를 입은 내가 오히려 이상해 보인다. 이 섬에서 청바지를 입고 걷는 사람은 나 하나다. 나도 하나 사고 싶다. 관광객 말고, 여기 사는 사람처럼 이 거리에 녹아들고 싶다.
네이아푸의 좁은 길을 걷다 보면 수공예품을 파는 사람들이 있다. 조개껍데기 목걸이, 나무를 깎아 만든 물고기, 손으로 짠 바구니. 항구 근처에서 한 남자가 말을 건다. "Hey, brother!" 웃는 얼굴로 다가와 물건을 펼쳐 보인다. 그중에 투페누가 있다. 남색 바탕에 흰 무늬가 들어간 천. 그가 가격을 부른다. 주머니 사정을 헤아려 본다. 돈은 아껴야 한다. 아직 갈 길이, 돌아갈 길이 남았다.
그때 생각이 하나 스친다. 나에게는 잭 다니엘이 한 병 있다.
"돈 대신 양주로 줄 수 있어요?"
그의 눈이 커진다. "뭐? 양주?" "잭 다니엘. 한 병." 남자가 잠시 말을 잃는다. 침을 삼킨다. 그러더니 손을 내민다. "딜?" "딜!"
게스트하우스로 돌아가 잭 다니엘 한 병을 가져와 건넨다. 남자가 그것을 두 손으로 받는다. 병을 햇빛에 비춰 보고, 상표를 손끝으로 쓰다듬는다. 보물을 받아 드는 손이다. 그 손을 보면서도 나는 아직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한다.
투페누를 입고 시장을 걷는다. 허리에 천을 감고, 통가 남자들처럼. 처음엔 걸음이 어색하다. 걸을 때마다 천이 무릎에 감긴다. 그런데 신기한 일이 벌어진다. 아무도 나를 쳐다보지 않는다. 아시아인이 투페누를 입고 걸어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그게 통가다. 그 무관심이 편하다. 뉴질랜드에서도, 한국에서도 느껴본 적 없는 편안함이다. 여기서는 아무도 내가 어디서 왔는지, 무엇을 하다 왔는지 묻지 않는다.
투페누를 입고 나서야 이 섬이 조금 다르게 보인다. 시장의 여자들이 돗자리에 과일을 펼쳐 놓고, 아이들이 그 사이를 맨발로 뛰어다니고, 남자들은 나무 그늘에 앉아 무언가를 마신다. 서두르는 사람이 없다. 나도 그 속도에 발을 맞춰 걷는다. 청바지를 입었을 때는 관광객이었는데, 천 한 장을 허리에 두르자 그냥 거리의 한 사람이 된다. 옷 한 벌이 그렇게 사람을 바꾼다. 도망쳐 온 사람도, 여기서는 그냥 투페누를 입은 남자 하나일 뿐이다.
나중에 알게 된다. 잭 다니엘 한 병이면 투페누를 대여섯 벌은 살 수 있었다. 남태평양에서 양주는 금이다. 위스키 한 병에 섬 사람들이 무엇까지 내주는지, 나는 그때 몰랐다. 그걸 투페누 한 장과 바꾼 것이다. 바가지를 쓴 셈이다. 그런데 이상하게 화가 나지 않는다. 오히려 웃음이 난다. 바가지를 썼다는 게 아니라, 내가 아직 이 세계의 규칙을 하나도 모르고 있었다는 게.
이 세계에는 이 세계의 환율이 있다. 그리고 그 환율을 배우는 데는 대가가 든다. 첫 수업료로 잭 다니엘 한 병을 냈다. 비싼 수업료였지만, 아깝지 않다. 투페누 한 장에 이 섬 사람 하나가 되었으니, 그 값을 위스키로 치른 셈이다. 그날 저녁, 새 투페누를 입고 발코니에 앉아 남은 담배에 불을 붙인다. 아직 말보로 두 보루가 남아 있다. 이 세계의 진짜 규칙은, 바로 그 담배가 가르쳐준다. 그리고 그 수업은 오늘 밤부터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