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백년연구소 남태평양 요트세일링 · 원문 그대로
남태평양 요트세일링 · 금요일 연재 · 11화

11화. 21일 만의 육지

푸른 낙타 작 · 연작소설

Vava'u. 통가 북부의 섬, 50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군도. 산호 석회암과 야자수, 터키색 바다.

항구가 보였을 때 울 뻔한다. 21일이 걸렸다. 이반의 배, 이반의 규칙, 끝없는 바다, 파도, 구토, 갈증, 교대 근무, 잠을 자도 잔 것 같지 않던 밤들. 그게 끝난다.

네이아푸. 바바우의 수도라고 하기엔 너무 작은 마을이다. 항구를 중심으로 펼쳐진 작은 시내. 중국인 가게 몇 개, 식당 몇 개, 교회 몇 개. 그게 전부다. 하지만 땅이다. 흔들리지 않는 땅.

이반과 악수한다. "Good luck, mate." "Thanks, Ivan." 배낭을 메고 부두를 걷는다.

첫걸음부터 이상하다. 부두는 콘크리트다. 못이 박힌 것처럼 단단하고, 파도에 흔들릴 이유가 전혀 없다. 그런데 발밑이 울렁인다. 몸이 왼쪽으로 기운다. 다리에 힘을 줘 버틴다. 다시 오른쪽으로. 지나가던 통가 남자가 이상하다는 눈으로 쳐다본다. 취한 게 아니라고 말하고 싶지만 말이 안 나온다.

몸에 새겨진 리듬이 아직도 돌고 있다. 이십일 일 동안 배는 잠시도 가만있지 않았다. 파도가 밀 때마다 무릎이, 허리가, 목이 자동으로 반응하도록 몸이 다시 짜여졌다. 이제 그 반응이 상대할 파도가 없는데도 계속 작동한다. 땅은 흔들리지 않는데, 몸은 땅이 흔들린다고 계속 보고한다. 눈은 콘크리트가 가만히 있다고 말하고, 귓속 어딘가는 여전히 오르내림을 느낀다고 우긴다. 두 정보가 싸운다. 그 싸움이 어지럼증으로 나타난다.

게스트하우스 방에 짐을 내려놓고 침대에 눕는다. 침대는 당연히 움직이지 않는다. 그런데 누워 있으면 마치 배 위에 누운 것처럼 몸이 완만하게 오르내리는 게 느껴진다. 천장을 보면 천장이 아주 조금씩, 리듬을 갖고 흔들리는 것 같다. 눈을 감아도 마찬가지다. 오히려 눈을 감으면 더 또렷하다. 손을 뻗어 침대 프레임을 잡는다. 잡을 필요가 없는데 잡는다. 배 위에서 밤마다 하던 습관이 손끝에 남아 있다.

일어나 걸으려 하면 방향이 흔들린다. 똑바로 걷는데 발이 자꾸 벽 쪽으로 쏠린다. 문틀을 짚는다. 문틀도 움직이지 않는데, 짚어야 안심이 된다. 복도를 걷는 사람들은 아무렇지 않게 똑바로 걷는데, 자기만 술 취한 사람처럼 벽을 짚으며 걷는다.

나중에 이 증상에 이름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땅멀미. 바다에서 오래 지낸 뒤 육지에 오르면 며칠, 길게는 몇 주까지 이 흔들림이 남는다고 한다. 뱃사람들은 이걸 '독 록(dock rock)'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몸이 파도에 맞춰 재조정된 균형 감각을 다시 육지용으로 되돌리는 데 시간이 걸리는 것이다. 배 위에서 처음 겪은 배멀미는 이레 만에 몸이 적응하며 사라졌다. 땅멀미는 반대다. 적응이 다 끝난 뒤, 그 적응한 몸으로 돌아온 세상이 도리어 낯설어지는 것이다. 몸이 너무 잘 적응해서 생기는 병.

발밑이 이상하다. 21일 동안 흔들리는 갑판 위에서만 살았더니, 움직이지 않는 땅이 오히려 흔들리는 것 같다. 침대에 걸터앉아 두 손으로 무릎을 짚고 그 흔들림이 잦아들기를 기다린다. 잦아들지 않는다. 대신 몸이 그 흔들림에 다시 익숙해진다. 파도가 없는데 파도를 타는 법으로 서 있는 법을 배운다.

꼬박 하루를 잔다. 중간에 한 번 깨는데 밖이 어두운지 밝은지도 모른다. 다시 잔다. 새소리와 닭 울음소리에 또 깼다가, 다시 잔다.

진짜로 일어나는 건 그다음 날 아침이다. 해가 창문으로 들어온다. 몸이 가볍다. 걸어본다. 여전히 아주 조금, 배 위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남아 있지만 어제만큼은 아니다. 21일간의 바다가 조금씩 빠져나가고 있다. 샤워를 한다. 민물이다. 배 위에서는 바닷물로만 씻었다. 민물이 피부 위로 흐를 때, 사치라는 게 이런 거구나 싶다.

밖으로 나온다. 아무 계획이 없다. 21일간은 매 순간이 계획이었다. 교대 시간, 돛 조절, 기상 확인, 식사 당번. 여기엔 아무것도 없다. 그냥 걷는다. 걸음이 아직 완전히 똑바르지 않다. 상관없다.

우타칼롱알루 마켓. 통가 여인들이 돗자리 위에 물건을 펼쳐놓고 앉아 있다. 바나나, 파파야, 망고, 타로, 참마, 코코넛. 바나나 한 다발을 산다. 줄기째, 수십 개가 달린 채로. 한 개를 떼어 먹는다. 짧고 통통하고 당도가 높다. 21일간 통조림과 비스킷을 먹었던 입에 과일 맛이 번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