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이 지나가자 북풍이 계속 분다. 배는 거의 제자리걸음, 하루에 오 마일, 십 마일씩밖에 전진하지 못한다. 사노트를 유지하던 배가 역풍을 만나니 거의 멈춘다. 지그재그로 가야 한다. 태킹, 방향을 바꾸며 조금씩 전진.
이반은 점점 더 신경질적으로 변한다. 애드먼드에게도, 로이에게도 퉁명스럽게 군다. 나에게는 아예 말도 걸지 않는다.
출항 열엿새째부터 배 안에는 신분이 생긴다. 말로 설명하기보다, 이렇게 그려보는 게 정확할 것 같다.
무대에 조명이 비추인다. 무대에는 네 명이 서로 등을 바라보고 있다. 작은 나무 상자 하나만 무대 위에 놓여 있다. 파도 소리가 조명 아래 낮게 깔린다.
군주(이반) — 상자 위에 올라서며. (방백) 이 배는 내가 만들었다. 칠 년이다. 여기서 내가 정한 게 법이다. 누구도 나에게 배 타는 법을 가르치지 않았다. 나는 왕이고, 이 배는 내 왕국이다.
광대(애드먼드) — 상자 주위를 돌며 웃는다. (방백) 나는 왕의 편이다, 왕이 웃을 때는. 나는 저 애의 편이다, 저 애가 힘들어할 때는. 어느 쪽도 진짜 편은 아니다. 나는 웃는 게 일이다. 웃음은 아무것도 잃지 않는다.
인텔리(로이) — 상자에서 조금 떨어져 서서, 나침반을 손에 쥐고. (방백) 나는 안다, 이게 옳지 않다는 걸. 나는 안다, 이게 어디로도 이어지지 않는다는 걸. 하지만 나는 이 배에서 내릴 마음이 없다. 아는 것과 행동하는 것 사이, 그 거리가 내 자리다.
무지랭이 부르조아(나) — 상자에서 가장 멀리, 뱃머리 쪽에. (방백) 나는 돈이 있다, 그런데 아무 힘이 없다. 나는 배울 게 있다, 그런데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는다. 나는 도망 온 사람이고, 여기서도 또 도망칠 곳을 찾고 있다. 상자를 가진 사람은 이반이다. 나는 상자를 가져본 적이 없다.
네 개의 조명이 하나씩 꺼진다. 파도 소리만 남는다.
요트는 좁다. 좁은 공간에서는 배역이 빨리 정해지고, 한번 정해진 배역은 잘 바뀌지 않는다.
어느 날 오후, 참다 못해 이반이 없을 때 몰래 라면을 끓인다. 물을 끓이고 라면을 넣는 순간, 이반이 나타난다.
"뭐 하는 거야!" "죄송합니다. 너무 배고파서…" "내가 뭐라고 했어! 내 주방은 안 된다고!" 목소리가 살롱 전체에 울린다. 애드먼드가 나오고 로이도 나온다. "Ivan, 진정해…" "진정하라고? 이 새끼가 내 규칙을 어겼어!" 이반이 손가락질한다. "배에서 내려!" "…예?" "다음 항구에서 내려! 더 이상 안 태워!"
정적. 파도 소리만 들린다. 로이가 나선다. "Ivan. 우리 아직 항구에서 일주일은 떨어져 있어. 진정하고 얘기하자." 애드먼드도 거든다. "Ivan, 라면 하나 끓인 걸로 그러기엔…" 그러면서도 웃고 있다. 진지하지 않다. 중재하는 척하면서 구경하는 것 같다. "너희는 상관없어!" 이반이 소리치며 다가온다. "너, 왜 내 배에 탔어? 뭐 하러 통가 가?" 대답하지 못한다. 뭐라고 말할까. 도망쳐 왔다고, 벤처가 망했다고, 아내가 떠났다고. "대답 못 해?" 이반이 비웃는다. "너 같은 놈들 많이 봤어. 인생 망친 놈들. 도망 다니는 놈들. 내 배를 피난처로 아는 놈들." 그 말이 가슴에 박힌다. 맞다. 도망 중이었다. 피난처를 찾고 있었다. 하지만 이 배는 피난처가 아니다. 또 다른 감옥이다.
그날 밤, 로이가 선실로 온다. "괜찮아?" "…네." "Ivan 원래 저래. 혼자 사는 데 익숙해서." "제가 잘못했어요." "아냐." 로이가 한숨을 쉰다. "나도 비슷한 경험 있어. 몇 년 전에 다른 요트 탔는데, 선장이 크루를 바다 한가운데서 내쫓으려 했어." "…" "권력이야. 배에서 선장은 왕이야. 법도 규칙도 다 선장이 만들어." 로이가 나를 똑바로 본다. "근데 이거 알아?" "…?" "이게 미국이야." "…미국요?" "그래. 선의로 포장된 착취. 처음엔 좋게 말해. '함께 가자, 음식 나눠 먹자.' 근데 막상 배 타면? 규칙 바뀌어. 돈 내. 내 것 쓰지 마. 마음에 안 들면 나가." 로이가 쓴웃음을 짓는다. "Ivan은 독일인이지만, 미국식으로 사는 거야."
낚싯대는 그 뒤로도 몰래 계속 쓴다. 처음엔 이반도 반겼다. 신선한 단백질, 매일 감자와 통조림 햄만 먹던 배 위에 생선 한 마리는 축제였다. 다랑어를 잡아 이반이 손수 회를 뜬 저녁도 있었다. 그런데 며칠 지나지 않아 태도가 바뀐다. 낚시로 잡은 생선이 늘어날수록, 하루 십 달러 식비 정산에서 뭔가 계산이 어긋난다고 느낀 모양이다. "이제 낚시하지 마." "왜요?" "내 배에 피 묻히지 마." 이유가 되지 않는 이유다. 낚싯대는 계속 쓴다. 갑판 한구석, 이반이 잘 안 보는 자리에서.
어느 오후, 줄에 뭔가 엄청난 무게가 걸린다. 처음엔 큰 물고기인 줄 안다. 두 손으로 릴을 붙잡고 온몸으로 버틴다. 감기지 않는다. 오히려 줄이 계속 풀려나간다. 릴 핸들이 손바닥을 파고든다. 배 뒤편, 수면 위로 하얀 날개가 퍼덕이는 게 보인다. 알바트로스다. 낚싯바늘을 삼킨 채 물 위에서 날개를 파닥이며 버티고 있다.
이반이 뛰어나온다. 새를 보더니 얼굴이 굳는다. "놔줘! 당장!" 소리친다. 새는 몸집에 비해 힘이 세다. 릴을 감으려 해도 감기지 않고, 배의 속도가 눈에 띄게 느려지고 있다. 새가 배를 끌고 있는 셈이다. 줄을 쥔 손에서 피가 배어난다. "줄 끊어!" 이반이 다시 소리친다. 칼로 줄을 끊는다. 새가 날개를 펴고 멀어진다. 낚싯줄 끝에는 이제 앙상한 쇠뭉치, 바늘과 봉돌만 남는다.
이반이 낚싯대를 낚아채듯 빼앗는다. 갑판에 내려놓는다. 발을 들어, 온 체중을 실어, 내리찍는다. 한 번. 다시 한 번. 오래된 카본 로드가 둔탁한 소리를 내며 꺾인다. "이제 끝이야." 이반이 말한다. 부러진 낚싯대를 주워 든다. 손잡이 쪽만 남고, 나머지는 두 동강이 나 있다.
피터의 낚싯대다. 천만원짜리. "다시 들고 돌아오라고" 했던 것. 부러진 채로, 통가까지 가져가는 수밖에 없다.
열아흐레째, 드디어 무역풍이 분다. 남동풍, 따뜻하고 강한 바람. 배는 시속 오노트로 달린다. 이반이 허용하는 최대 속도, 그래도 빠르다. 통가가 가까워진다. 이반도 기분이 나아진다. 애드먼드와 농담을 주고받고, 로이에게 커피까지 타준다. 나에게는 여전히 말이 없지만, 적어도 적대감은 사라진 것 같다.
그날 밤, 당직 중에 별을 본다. 이 주가 넘게 지났다. 이상한 일이 일어난다. 나를 생각하지 않게 된다. 내 과거를, 내 실패를, 내 이혼을. 파도만 있고 바람만 있고 지금만 있다. 나중에 읽게 될 크리스 맥캔들리스의 마지막 말이 있다 — "Happiness only real when shared." 요트 위에 네 명과 있었다. 말은 거의 안 했다. 하지만 혼자는 아니었다. 그게 달랐다. 그는 혼자 죽었고, 나는 함께 살아남고 있다.
"저기!" 애드먼드가 소리친다. 출항 스무날째, 수평선에 낮은 섬 하나가 떠 있다.
이십일 일 만에 처음 보는 것들이 하나씩 눈에 들어온다. 초록색, 바다에는 없던 색이다. 야자수, 바다에는 없던 수직선이다. 흰 새, 바다에는 없던 생명이다. 통가타푸, 통가의 본섬이다. 배는 정박하지 않고 그대로 지나친다. 통가 열도를 오른편에 두고 계속 북상한다. 목적지는 바바우. 모두가 갑판으로 나와 말없이 섬들을 바라본다. 이십일 일 만이다.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이반이 선실로 내려가더니 면도를 하고 올라온다. 애드먼드도 세수를 하고, 로이도 옷을 갈아입는다. 이십 일 동안 아무도 차림새를 신경 쓰지 않았다. 수염이 덥수룩하든 옷에서 냄새가 나든 상관없었다. 그런데 육지가 보이자 다들 때를 빼고 광을 낸다. 거울을 본다. 낯선 얼굴이 있다. 수염, 갈라진 입술, 햇볕에 탄 피부. 한국을 떠날 때의 내가 아니다. 민물로 세수를 한다. 이십일 일 만이다. 소금기가 씻겨 나가고 피부가 당긴다. 시원하다.
이십일 일 동안의 권력 게임이 끝나가고 있다. 이반의 배, 이반의 규칙, 이반의 왕국. 육지가 보이는 순간, 그 모든 게 풀리기 시작한다. 다시 각자의 세계로 돌아가는 것이다.
출항 스물한 날째, 2001년 6월 8일 저녁, 바바우 항구. 앵커를 내리고 엔진을 끈다. 정적. 파도 소리도 바람 소리도 사라진다.
이반이 말한다. "다들 수고했어. 내일 입국 수속하고 각자 갈 길 가면 돼." 애드먼드가 묻는다. "사진 찍자. 기념으로." 이반은 주저하다 고개를 끄덕인다. 살롱 안에 모인다. 로이가 카메라를 든다. 서른 살 나, 예순일곱 영국인 애드먼드, 검은 머리 쉰일곱 선장 이반. "다들 웃어!" 셔터가 눌린다.
나중에 그 사진을 보면, 이반만 표정이 굳어 있다.
그날 밤, 선실로 내려가 짐을 꺼낸다. 라면, 쌀, 통조림 — 이십일 일 동안 손대지 못했던 것들. 갑판으로 올라간다. 로이와 애드먼드가 있다. 이반은 자기 선실에 들어가 있다. "나눠 먹읍시다." 로이가 웃는다. "기다렸어." 애드먼드도 고개를 끄덕인다. 이반 없이 통조림을 열고 라면을 끓인다. "이거 이반한텐 줄 거야?" "…아뇨." "좋아." 애드먼드가 낄낄 웃는다. 밤새 먹고 마신다. 이반은 선실에서 나오지 않는다.
혼자 갑판에 앉는다. 바바우 항구의 불빛이 보인다. 작은 불빛들, 이십일 일 만에 보는 인공의 빛. 바다는 여전히 검고 하늘에는 여전히 별이 있다. 남십자성, 이십일 일 동안 나를 이끌어준 별. 나중에 읽게 될 무아테시에의 글이 있다 — "I could have won the race. But I chose to keep sailing. Because the sea was more real than any trophy." 레이스를 하지 않았다. 트로피도 없었다. 그냥 도망쳤고, 여기까지 왔다. 하지만 무언가가 달라져 있다. 뭔지는 모른다. 그냥 느낀다.
이십일 일, 약 천백 마일, 평균 사노트, 네 남자, 한 척의 배. 그게 다였다. 하지만 그게 전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