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백년연구소 남태평양 요트세일링 · 원문 그대로
남태평양 요트세일링 · 금요일 연재 · 08화

8화. 파도를 타다

푸른 낙타 작 · 연작소설

네 번째, 다섯 번째. 요령이 생긴다. 파도를 정면으로 맞지 않는 법을 몸이 먼저 알아챈다. 영화에서 본 윈드서핑처럼, 파도가 덤벼들 때 키를 틀어 배 전체를 돌려서 비껴 탄다. 파도가 오는 걸 눈으로 먼저 읽고, 골이 깊어지는 순간에 키를 왼쪽으로 밀고, 마루에 올라타는 순간에 다시 오른쪽으로 당긴다. 몇 번 하다 보니 리듬이 생긴다. 파도, 키 틀기, 올라타기, 내려오기, 다음 파도. 손바닥은 여전히 로프에 쓸려 아프지만, 그 아픔이 이제는 멀게 느껴진다.

백골단도 파도였다. 최루탄도 파도였다. 정면으로 맞으면 죽는다. 비껴서 타야 산다. 그렇게 십 년을 살아남았다. 그리고 지금, 바다 한가운데서 다시 배우고 있다. 똑같은 것을. 라이센스도 없이, 경험도 없이, 점점 능숙해진다. 배운 적 없어도 살아남으려면 배운다. 파도를 피할 수 없으면 타는 법을 배운다. 인생이 다 그런 것이다.

공포가 환희로 바뀌는 순간이 온다. 어느 순간부터 웃음이 난다. 그다음엔 욕이 터져나온다. 떠난 여자들에게. 공포정치를 펼친 군인 정치인들에게. 십 년 동안 나를 뒤에서 밀던 그 모든 것들에게. 나를 지배하던 공포의 실체와 맞닥뜨린 밤이다. 그 실체가 지금 눈앞에서 검은 물벽으로 서 있고, 나는 그것을 타고 넘는다. 그다음부터는 파도타기 놀이다. 큰 파도가 오면 올라타고, 파도 위에서 파도를 지배하며, 파도가 꺾일 때까지 움직임을 따라간다.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다시 왼쪽으로. 파도를 맞이하고 흘려보낸다. 기세가 꺾인 파도는 이제 사소해 보일 만큼 약해진다.

욕은 노래로 바뀐다. 대학교 앞에서 카페 아르바이트를 하며 부르던 김광석 노래, 합창단 시절 부르던 노래. 목이 터지도록 부른다. 바람이 그 소리를 곧바로 뜯어가 뒤로 흘려보낸다. 아무도 듣지 않는다. 한 시간 동안 온갖 노래를 다 부른다. 승전가라고 해야 할까. 흠뻑 젖은 채로, 소금물이 눈에 들어가 따가운 채로. 두 시간쯤, 그렇게 파도를 즐기며 이겨낸다.

바다에 다시 정적이 찾아온다. 남십자성이 다시 눈에 들어온다. 낮에 이반이 한 말이 떠오른다. "바다에서는 아무리 센 폭풍이라도 36시간을 넘기지 않아. 견디면 흘러가." 세고 빠른 폭풍을 만난 것이다. 한없이 공포의 대상이었던 이반이었지만, 그 순간엔 그가 한 말이 떠오른다. 그랬다.

새벽 여섯 시, 파도가 잦아든다. 끝났다. 갑자기 끝난다. 바람이 멈추고 파도가 잦아든다. 너무 조용하다. 귀가 이상해졌나 싶다. 폭풍 동안 들었던 소리들이 갑자기 사라지니까 고막이 멍하다. 몇 시간을 으르렁대던 바람이 한순간에 입을 다물자, 그 침묵이 소리보다 더 크게 들린다.

셋이 갑판으로 올라온다. 이반, 로이, 애드먼드. 흠뻑 젖어 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바닷물 범벅이다. 폭풍 내내 선실에서 무얼 하고 있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셋은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괜찮아?" 로이가 묻는다. "…네." "잘했어. 배 멀쩡해." 그게 끝이다. 감사 인사도, 칭찬도, 격려도 없다. 배가 멀쩡하다는 것, 그거면 됐다는 얼굴들이다.

해가 떠오른다. 주황색, 분홍색, 금색. 밤새 검기만 하던 바다에 색이 돌아온다. 이반이 수평선을 바라보다 웃는다. 처음이다. 이가 보이고 주름이 생긴다. 다른 사람 같다. "배는 항구에 있을 때 제일 안전해." "…" "하지만 배는 그러려고 만든 게 아니야." 그가 담배를 꺼내 문다. "폭풍 만나러 만든 거지." 처음으로 이반이 한 말 중에 동의할 수 있는 말이다. "무서웠어?" 그가 묻는다. "…네." "무서운 건 상관없어. 손이 배를 놓지만 않으면 돼. 바다로 나가기로 한 건 너야. 그 결정은 네 거야." 로이가 옆에서 고개를 끄덕인다.

애드먼드가 올라와 소리친다. "What a night! I thought we were going to die!" 웃고 있다. 항상 웃고 있다. "But we didn't! Ha!" 그가 양파를 꺼내 날것으로 베어 문다. "Good for the nerves." 여전히 나눠주지 않는다.

"Go sleep." 이반의 명령. 선실로 내려가 쓰러져 잔다. 몸이 물먹은 솜 같다. 눈을 감자마자, 파도 소리도 없이 잠으로 떨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