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날 아침, 빵과 커피를 먹는다.
삼십 분 후 전부 토한다.
점심은 먹지 않는다.
저녁에 물만 마신다.
그것도 토한다.
둘째 날은 아무것도 먹지 않았는데 토한다.
위액이다.
노란색, 쓴맛.
셋째 날엔 토할 것도 없다.
마른 구역질만 반복된다.
횡격막이 경련하고 갈비뼈가 아프다.

가끔 심장이 너무 빨리 가라앉는다는 느낌이 든다.
분노와 서러움과 지침이 한꺼번에 쏟아져서, 그대로 태평양 밑바닥까지 내려가 다시는 끌어올리지 못할 것 같은.
위장이 뒤집히는 것과 심장이 가라앉는 것, 그 둘이 언제부터 같은 감각이 되었는지 모른다.
"괜찮아?"
로이의 목소리다.
"물… 물 좀…"
"I warned you, mate."
그가 물병을 건넨다.
물이 목구멍을 타고 내려가다 다시 올라온다.
애드먼드가 갑판에서 내려온다.
예순일곱, 숱 성긴 흰머리.
그도 배멀미에 시달리는 기색이지만 웃고 있다.
"Hey, Korean boy! You look like a dying fish!"
그가 낄낄거린다.
"I've seen worse. Once in Gibraltar, a German threw up for five days straight! Five days! Can you imagine? He lost ten kilos!"
그는 자기 말에 자기가 웃는다.
"Ha! Ten kilos! Best diet ever!"
애드먼드는 늘 그렇다.
말이 끊이지 않는다.
아침에 시작한 이야기가 저녁까지 이어지고, 저녁에 그 이야기를 다시 처음부터 한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언제나 그 자신이다.
지브롤터에서 본 것, 케냐에서 만난 사람, 연금이 매달 얼마씩 들어온다는 것.
진지해지는 법이 없다.
누군가 힘들어하면 농담을 던지고, 분위기가 무거워지면 노래를 부르고, 갈등이 생기면 구경한다.
배 위의 광대.
그런데 그의 짐 속에는 양파가 가득하다.
봉지 세 개.
"Good for health,"
라고 말하면서 아무에게도 나눠주지 않는다.
몸에 좋으니 자기가 먹어야 한다는 것이다.
위로는 하되 물건은 주지 않는다.
그게 애드먼드다.
그리고 그는 거의 움직이지 않는다.
갑판 청소도, 매듭도, 물통 나르기도.
예순일곱이라는 나이가 면허처럼 쓰인다.
몸은 멀쩡하다.
계단을 오르내리는 걸 보면 안다.
다만 그럴 이유가 없다고 여기는 것뿐이다.
넷째 날에도 여전히 지옥이다.
애드먼드도 비슷한 상태지만 이반과 로이는 멀쩡하다.
이반이 뒤통수에 대고 말한다.
"배멀미는 마음의 문제야."
대답할 힘도 없다.
"며칠 뒤면 땅멀미하게 될걸."
그가 낄낄거린다.
"넌 지금까지 흔들리지 않는 땅에 익숙해져 있을 뿐이야. 흔들리는 게 원래 상태야. 바다가 원래고, 땅이 예외인 거지."
로이가 옆에서 거든다.
"처음엔 다 그래. 일주일 지나면 괜찮아질 거야."
일주일.
사흘이 더 남았다.
닷새째, 마른 구역질도 잦아든다.
여전히 어지럽지만 몸을 일으킬 수는 있다.
콕핏으로 기어 올라가 그냥 눕는다.
할 수 있는 게 그것뿐이다.
선실 안, 내 자리는 침대라고 부르기 민망한 선반 하나다.
백팔십 센티미터 남짓, 옆으로 누우면 어깨가 벽에 닿고 돌아누우면 반대쪽 벽에 닿는다.
처음 며칠은 그 좁음이 오히려 다행이었다 — 몸을 뒤척일 기운조차 없었으니까.
잠은 늘 조각나 있다.
세 시간 자고 세 시간 당직, 다시 세 시간.
꿈과 파도 소리가 섞인다.
꿈에서 깬 건지 꿈으로 들어간 건지 모를 때가 있다.
로이가 옆에 앉아 매듭 몇 개를 알려준다.
연습해.
손가락이 굼뜨다.
세 번 만에 겨우 하나를 묶는다.
4시간씩 교대로 당직을 서기로 정했다지만, 아직은 아무도 그걸 지키라고 하지 않는다.
몸이 이 정도인 걸 다들 안다.
갈 길은 멀고, 서두를 일도, 할 일도 없다.
그 시간에 로이가 틈날 때마다 요트에 대해 설명해준다.
로이는 뉴질랜드 사람이다.
쉰.
키가 커서 선실에서는 늘 목을 숙이고 다닌다.
웃지 않을 때도 웃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얼굴이다.
이반과는 정반대다.
초등학교에서 이십 년 넘게 시설관리를 했고, 작년에 그만뒀다.
이십 년을 아이들 사이에서 보낸 사람의 말투가 몸에 남아 있다.
모르는 것을 물어도 얼굴색이 변하지 않고, 대답하기 전에 상대가 어디까지 아는지를 먼저 확인한다.
아내와 캐나다로 요트를 타고 이주할 계획이고, 그 전에 이반의 배에서 대양 항해 경험을 쌓으려고 탔다.
설명할 때 목소리를 올리지 않는다.
같은 것을 세 번 물어도 세 번 다 같은 속도로 대답한다.
그 시간에 주로 듣는 건 이반의 이야기다.
콕핏에 누운 채로, 몸을 움직일 기운은 없지만 귀는 열려 있다.
체코에서 태어났다.
열여덟에,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국경을 넘어 독일로 갔다.
돌아갈 수 없는 방식으로 갔다.
말도 안 통하는 나라에서 공장에 취직했고, 얼마 안 가 자기 공장을 가졌다.
독일에서 제조업 사장으로 이십 년을 살았다.
언젠가 자기 손으로 요트를 만들어서, 회사는 물려주고, 일찍 은퇴하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리고 그 이십 년 내내 배를 만들었다.
회사를 굴리면서, 주말마다, 저녁마다.
칠 년을 그렇게 해서 배를 완성했다.
배가 다 되자 회사를 넘기고 마흔일곱에 은퇴했다.
그리고 함부르크에서 출항했다.
지중해에서 십 년을 지냈다.
물가가 올라 더 싼 곳을 찾아 뉴질랜드로 왔다.
뉴질랜드도 물가가 올라, 더 싼 남태평양, 통가로 가는 길이다.

그 이야기 속에 가업승계가 있다.
그때는 그런 말이 있는 줄도 몰랐다.
누워서 듣는데도 그냥 부럽다.
행색은 허름한 뱃사람이지만, 그는 자기 꿈을 이룬 사람이다.
회사를 넘기고 배로 옮겨 탄 사람을 나는 그때 처음 보았다.
그것이 가능한 일이라는 것도 그때 처음 알았다.
일곱째 날 아침, 기적처럼 세상이 멈춘다.
배는 여전히 흔들리는데 몸이 그 리듬을 받아들인다.
위장이 더 이상 반항하지 않는다.
갑판으로 기어 올라가면 수평선, 구름 한 점 없는 하늘, 오월의 남태평양.
그리고 배고픔이 온다.
미친 듯한 배고픔.

일주일이 지나자 시간이 다르게 흐른다.
아니, 시간이 흐른다는 개념 자체가 달라진다.
육지에서 시간은 선이었다.
과거에서 미래로, 월요일에서 화요일로, 출근에서 퇴근으로.
바다에서 시간은 원이다.
해가 뜨고 지고, 당직이 시작되고 끝나고, 파도가 오고 간다.
로이에게 오늘이 며칠이냐고 물으면 "글쎄, 일요일?"
하고 되묻는다.
그도 모른다.
여드레째, 살롱으로 내려가 짐을 뒤진다.
팡가레이에서 사둔 라면 세 박스, 쌀 십 킬로, 통조림들.
주방으로 가 라면을 끓이려는데 이반이 나타난다.
"뭐 하는 거야?"
"라면 끓이려고요."
"안 돼."
"예?"
"내 주방은 안 돼. 음식은 내가 만들어준다. 비용은 네가 낸다."
석 달 전, 펍에서 만났을 때는 달랐다.
"음식은 공동으로 해결해. 각자 좀 가져와. 나눠 먹으면 돼."
그게 규칙이었다.
지금은 다르다.
"내 배야. 내 규칙이야."
이반의 눈빛은 차갑고 단호하다.
말을 마치고 그는 대답을 기다리지 않는다.
반박이 오지 않는 것을 확인하는 눈이다.

라면을 들고 침실로 돌아가 문을 닫고 주저앉는다.
주방에는 짐벌이 달려 있다.
배가 흔들려도 냄비가 수평을 유지하도록 만든 장치, 처음 봤을 때는 신기했다.
배가 사십오 도로 기울어도 냄비 속 물은 평평했다.
문제는 냄비를 잡은 손이 그 사십오 도를 고스란히 견뎌야 한다는 것이다.
저녁, 이반이 감자와 통조림 햄을 요리한다.
매일 같은 메뉴다.
애드먼드는 자기 봉지에서 양파를 꺼내 썰어 자기 접시에만 올린다.
이반도, 나도 달라고 하지 않는다.
각자의 것은 각자의 것이다.
로이가 중재에 나선다.
"Ivan, 좀 심한 거 아냐?"
"내 배야."
"알아. 하지만 규칙이 이상해. 처음부터 음식 공동으로 하기로 했잖아."
"공동이지. 내가 요리해주면 돼."
"그럼 네가 요리해줘. 돈은 나중에 정산하고."
이반이 한참을 생각하다 고개를 끄덕인다.
"좋아. 하루 십 달러."

한화로 칠천 원, 세끼로 나누면 한 끼에 이천 원 조금 넘는다.
문제는 이반이 만드는 음식이다.
감자, 통조림 햄, 양배추.
매일 똑같다.
애드먼드는 끼어들지 않는다.
접시를 든 채로 두 사람을 번갈아 보다가, 다 끝난 뒤에 나에게만 말한다.
"Rough, isn't it."
그가 어깨를 으쓱한다.
"Well. You two sort it out."
그러고는 자기 양파를 썬다.
그 자리에서 그가 한 일은 그것뿐이다.
이반에게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이반도 애드먼드에게는 아무 말을 하지 않는다.
이 배에서 이반이 목소리를 높이지 않는 상대는 애드먼드 하나다.
늦게 일어나도, 당직을 걸러도, 양파를 혼자 먹어도.
예순일곱 영국 노인에게만 이반은 관대하다.
그 관대함이 어디서 나오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그 관대함이 남긴 몫이 어디로 가는지는 곧 알게 된다.
아흐레째 아침, 갑판으로 올라가자 이반이 소리친다.
"저기 가서 있어. 방해되니까."
그가 가리킨 곳은 뱃머리 너머, 바우스프릿이다.
선수에서 바다 쪽으로 길게 뻗은 구조물, 배의 맨 끝이다.
좁은 갑판을 지나 뱃머리를 넘어 그 끝까지 걸어간다.
발밑에 바다가 출렁인다.
해적선에서 죄수를 처형할 때 널빤지를 걷게 했다고 들었다.
그 끝에서 바다로 떨어지는 것.
지금 서 있는 자리가 딱 그렇다.
끝에 앉는다.
다리를 아래로 늘어뜨린다.
발끝에서 바다까지 이 미터쯤이다.
배가 파도 골로 내려갈 때마다 그 거리가 반으로 줄었다가 다시 늘어난다.
붙잡을 것은 스테인레스 봉 하나다.
두 손으로 그것을 쥔다.
손가락 마디가 하얘진다.

뒤에는 이반이 있고 앞에는 아무것도 없다.
돌아가려면 이반 쪽으로 가야 하고, 그러지 않으려면 여기 있어야 한다.
여기서 손을 놓으면 아무도 모른다.
넷 중 셋은 선실에 있고 이반은 돛을 보고 있다.
물에 떨어지고 나서 누가 알아채기까지 얼마나 걸릴지 계산해본다.
답이 나오지 않는다.

여기서 죽을 수도 있겠구나.
그 생각을 한 것이 열 시쯤이다.
그때 나비 한 마리가 보인다.
노란 나비.
배 주위를 한 바퀴 돈다.
육지에서 최소 오백 마일은 떨어진 바다 한가운데다.
처음에는 눈이 잘못됐다고 생각한다.
사흘 동안 제대로 먹지 못했으니 그럴 수 있다.
눈을 감았다 뜬다.
나비는 그대로 있다.

나비는 바다가 얼마나 먼지 모른다.
얼마나 깊은지도 모른다.
모르니까 여기까지 온 것이다.
앞이 밝아서 오는 것이 아니다.
날고 있으니 계속 가는 것이다.
나비가 바우스프릿 끝에, 손등에서 한 뼘 떨어진 자리에 내려앉는다.
날개를 접는다.
편다.
접는다.
편다.
노란색, 햇빛 색.
무섭지 않아진 것은 아니다.
손은 여전히 봉을 쥐고 있고 손가락 마디는 여전히 하얗다.
다만 그 나비를 보고 있는 동안에는 다른 것을 보지 않는다.
저 작은 것도 여기까지 왔다.
그 뒤로는 시간을 세지 않는다.
배가 오르내리고, 나비가 날개를 접었다 펴고, 물이 선체를 때린다.
뒤에서 이반이 로이에게 뭐라고 소리치는 것이 들린다.
무슨 말인지는 들리지 않는다.
예전 같으면 어깨가 먼저 굳었을 것이다.
굳지 않는다.
내려온 것은 해가 기울고 나서다.
다리를 갑판 위로 끌어 올리는데 무릎이 펴지지 않는다.
두 손으로 무릎을 눌러 편다.
손바닥에 봉의 자국이 가로로 남아 있다.
콕핏 시계를 본다.
세 시다.
열 시에 나갔다.
다섯 시간이다.
내려와서 처음 한 일은 물을 마신 것이다.
두 번째는 이반에게 담배를 하나 얻은 것이다.
이반이 아무 말 없이 말아 건넨다.
받아서 피운다.
그도 아무것도 묻지 않는다.

나비는 이틀을 요트에 머문다.
그리고 어느 아침, 눈을 떴을 때, 나비는 없다.
바다에 떨어졌는지, 바람을 타고 더 멀리 갔는지 모른다.
바우스프릿 끝에 서서 한참을 바라보다 돌아온다.
이반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날부터 배가 조금 다르게 보인다.
배가 달라진 것은 아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