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항하자마자 바람이 좋다. 로이가 묻는다.
"바람 좋은데. 6노트 가능하겠어."
"안 돼." 이반이 단호하게 말한다. "4노트. 많아야 5노트."
"왜?"
"이 배는 내 마지막 재산이야." 이반이 수평선을 본다. "빠르게 가면 뭐해. 도착 못 하면. 선체가 낡았어. 무리하면 갈라져." 그가 돛줄을 만진다. "천천히 가도 돼. 바다는 안 도망가."
로이가 어깨를 으쓱한다. 더 말하지 않는다. 이반의 배이고, 이반의 규칙이다. 돛이 반쯤만 펼쳐진 채로, 배는 받을 수 있는 바람의 절반만 받는다. 다른 배라면 하루면 갈 거리를, 이 배는 이틀에 걸쳐 간다. 그게 이반이 배를 아끼는 방식이다.
21일이 걸린 이유를 나중에야 안다. 바람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이반이 바람을 받고도 돛을 올리지 않았다.
물이 선체를 때리는 소리가 규칙적으로 들린다. 철썩, 철썩. 처음에는 그 소리가 좋다. 드디어 떠난다는 것. 한국에서, 뉴질랜드에서, 나를 아는 모든 사람에게서 멀어진다는 것. 배가 육지를 벗어날수록 등 뒤가 가벼워진다. 갑판에 서서 뒤를 자꾸 돌아본다. 아직은 육지가 보인다. 초록 언덕, 흰 집 몇 채, 그 위로 낮게 깔린 구름.
출항 두 시간 후, 뉴질랜드 해안선이 수평선 너머로 사라진다. 초록색이 사라지고, 언덕이 사라지고, 나무가 사라진다. 마지막으로 보인 것은 흰 등대 하나다. 그것마저 물 아래로 내려가듯 사라진다. 뒤를 돌아본다. 방금 전까지 육지가 있던 자리에 이제 아무것도 없다. 360도 사방이 회색과 파란색, 그것뿐이다. 앞을 봐도, 옆을 봐도, 뒤를 봐도 같은 선이 이어진다. 하늘과 바다가 만나는 하나의 원. 그 원의 한가운데에 배가 있다.
프랑스 항해사 베르나르 무아테시에가 나중에 읽게 될 글에 이렇게 썼다 — "It is all of life that I contemplate—sun, clouds, time that passes and abides. The modern, artificial world where man has been turned into a money-making machine to satisfy false needs, false joys." 그때는 이 문장을 몰랐다. 그냥 무서웠다.
바다 위에는 붙잡을 것이 없다. 벽도, 기둥도, 땅도 없다. 배가 기울면 몸도 기운다. 배가 솟으면 위장도 함께 솟는다. 발밑이 계속 달아난다. 육지에서 스물일곱 해를 사는 동안 단 한 번도 의심해본 적 없던 것 — 바닥이 가만히 있어준다는 것 — 이 여기서는 없다. 여기서는 가만히 있는 것이 하나도 없다. 벽이 움직이고, 천장이 움직이고, 물컵 속의 물이 제 마음대로 기운다.
이반과 로이는 멀쩡하다. 갑판 위를 아무렇지 않게 오간다. 애드먼드는 조금 힘들어하는 기색이지만 그래도 웃고 있다. 나만, 이 넷 중에서 나만, 몸이 배의 움직임을 하나도 받아들이지 못한다. 배가 앞으로 고꾸라지고, 옆으로 눕고, 다시 뒤로 젖혀진다. 세 가지 움직임이 동시에 온다. 몸은 그중 하나에도 미처 적응하지 못한다.
파도가 높아지고 배가 좌우로, 앞뒤로 흔들리기 시작하자 위장이 뒤집힌다. 난간을 붙잡는다. 처음에는 침을 삼키는 것으로 버틴다. 그다음에는 눈을 감는 것으로 버틴다. 눈을 감으면 더 심해진다. 눈은 배가 기운다고 하는데 감으면 그 정보가 사라지고, 귓속은 여전히 기운다고 우긴다. 두 정보가 어긋난 자리에서 속이 뒤집힌다. 그다음에는 아무것으로도 버틸 수 없다. 뱃전으로 몸을 기울인다. 바다가 아주 가깝게, 회색으로 출렁인다. 위장이 목구멍까지 밀려 올라온다.
수평선을 본다. 사람들이 배멀미에는 수평선을 보라고 했다. 흔들리지 않는 것을 하나 붙잡으라고. 그런데 여기엔 그 하나가 없다. 수평선마저 배와 함께 오르내린다. 붙잡을 것이 없다는 것을 눈이 먼저 안다.
이반은 뱃머리에 서서 돛의 각도를 살핀다. 로프를 조금 당겼다 놓는다. 바람을 반만 받게, 딱 그만큼만. 나는 그 모습을 난간 너머로 흐릿하게 본다. 저 사람은 이 바다가 처음이 아니다. 나는 처음이다. 그 차이가 지금은 모든 것을 가른다.
이제 시작이다. 뉴질랜드는 사라졌고, 통가는 아직 멀고, 배는 4노트로 간다. 손에 쥔 것은 난간뿐이다.